
지난 30여년간 <터미네이터>,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 등 적잖은 SF물을 보며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사람들은 미래를 두려워한다는 것. 영화든 소설이든 SF의 세계에서 미래는 대체로 어둡게 그려진다. 외계인이나 기계에게 인류가 지배당하기도 하고, 고도화된 사회시스템에 의해 극단적인 독재정권이 탄생하기도 하며, 교육환경이나 의료기술의 그릇된 발전방향으로 인해 인간성이 배제된 사회체제가 등장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어두운 미래상이 대부분 지난 역사를 기반으로 재구성된 세계라는 점이다.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우주전쟁>, <혹성탈출> 등의 이야기는 과거 서구 제국주의가 저질렀던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을 뒤집은 것이고, <멋진 신세계>, <이퀼리브리엄>으로 대표되는 지독한 독재체제는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의 파시즘을 변주한 것에 불과하다. , <블랙미러> 등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또한 오늘의 사회문제를 확대하고, 거기에 살을 붙인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인류가 미래에 대해 품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은 지난 날과 오늘날의 과오가 훗날 또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SF를 통해 어제와 오늘을 반성한다. 그런 관점에서, SF는 미래를 가장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초엽 작가의 SF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7편의 단편들 역시 상술한 바와 궤를 같이한다. 저마다 고유한 설정을 가진 각각의 세계는, 미래를 배경으로 우리들의 현재와 과거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들이 여느 SF 소설보다 상대적으로 편하게 읽히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다른 작품들처럼 거창한 소재에 주목하기보다 소소한 일상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김초엽 작가가 그려낸 미래는 두렵다기보다는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정서는 ‘상실’이다. 작가는 기술이 발전해감에 따라 우리가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 추억과 그리움, 동경과 열망, 애정과 증오 등 과학적으로 미숙했기에 우리가 지닐 수 있었던 자잘한 감성들. 그것들이 사라져버린 세계를 통해 그러한 감성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하루에 한 꼭지씩 읽으며 출퇴근했던 지난 일주일간 통근길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고, 이야기들의 결말이 비극으로 향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독특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의 김초엽 작가가 앞으로 그려낼 또 다른 우주를 기대하며, 짧은 독후감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