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공주

알고 계신 분도 계시겠지만, 이 영화는 약 10여년 전에 벌어졌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영화 포스터 한 켠에 적혀있는 대사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그렇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한공주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오히려 질나쁜 범죄에 말려든 안타까운 피해자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쫓겨다니고, 불안해하고, 끝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맙니다. 공주의 사정을 듣고서 공분하다가도, 정작 공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는 주저하는 주변인들의 모습은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불편한 소재를 다룬 영화임에도, 우울함에만 치우치지 않게 제법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요. 이동진 평론가는 올해 4월까지의 한국 영화중 가장 좋았다고 평했는데, 개인적으로도 크게 공감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한공주>의 완성도와 별개로, 상반기 한국 영화 중 딱히 주목할만한 영화가 없었다는데 기인하는 점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영화의 큰 줄기는 어찌보면 통속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6년동안 키운 아들이 당신의 친자식이 아니라면?’이라는, 한국 드라마에서조차 이미 낡아버린 레퍼토리죠. 심지어 극 중의 주인공들조차 ‘그런 건 우리 부모 세대에나 있는 일 아니었나요?’라며 의아해할 정도니까요. 다만, 그런 출생의 비밀이 줄거리 전체를 차지하는 옛 드라마와 달리 이 영화는 차분하게 법정 절차를 밟아 조정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료타는 자신이 6년동안 기른 남의 자식 ‘케이타’를 계속 기를 것인지, 아니면 6년동안 다른 사람 손에 길러진 친자식 ‘류세이’를 데려와 기를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죠.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대주제는 가족이란 관계가 피로 이어져 있는가 아니면 시간으로 이어져 있는가 하는, 가족 본질에 대한 물음입니다. 자칫 신파로 빠질 수 있을 법한 주제와 설정을 이 영화는 감정의 과잉없이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철저하게 관찰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화법이 돋보이는 대목이라 할수 있을 것 같네요.

온갖 자극적인 소재의 영화가 쏟아지는 요즘, 보기 드물게 온 가족이 다같이 볼만한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세이빙 MR.뱅크스

영화 홍보시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디즈니와 트래버스 부인의 감동적인 메리포핀스 영화제작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실제적인 줄거리는 트래버스 부인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는 심리치료기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트래버스 부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녀가 어떻게 메리포핀스를 쓰게 되었고, 또 어떻게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가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사실 플롯 자체는 흔한 힐링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실화라는 사실이 그 뻔한 플롯에 묵직한 무게감을 부여합니다. 거기에 명배우들의 명연기가 한 몫한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죠. 영화 포스터에 가장 크게 걸려있는 건 톰 행크스와 엠마 톰슨의 이름입니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콜린 파렐의 연기였습니다. <폰부스> 때부터 눈여겨 봤지만, 콜린 파렐의 연기에는 형언하기 힘든 에너지가 있습니다. 물론,톰 행크스나 엠마 톰슨의 연기 또한 훌륭합니다. 특히 톰 행크스의 분장은 생전의 월트 디즈니를 보는 듯 합니다.

아쉬운 점 몇가지를 말해보자면, 일단 제가 메리포핀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 이런 저런 잔재미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리고 월트 디즈니가 상당히 미화된 모습으로 그려지는 점 또한 적잖이 아쉽습니다. 상대적으로 입체적인 성격을 가진 트래버스 부인이나 트래버스 고프에 비해 월트 디즈니는 그저 인자한 성인군자로만 등장합니다.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인만큼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바로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는 디즈니에서 만든 디즈니에 관한 영화라는, 너무나도 명백한 한계를 가진 영화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 영화가 꽤 잘 만든 영화라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영화] 키즈리턴

이 영화를 처음 접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고3이 되던 해, 박찬욱감독이 진행하는 ebs의 <시네마천국>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죠.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고3 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청춘들의 방황을 그린 이 작품을 접한 건 지금 생각해봐도 뭐라 형언하기 힘든 기연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청춘영화이며, 성장드라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청춘/성장드라마와 다르게 달달하지 않고, 꿈으로 가득차 있지 않고, 주인공들이 뭔가 성취를 이뤄나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주인공들은 사회와 부딪혀가며 끊임없이 쓴맛을 보고, 좌절하고, 처절하게 몰락해갑니다. 이 영화의 묘미는 이렇게 절망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이전작인 <소나티네>가 철저하게 파멸적인 결말을 가진 영화였다는 점에서 더욱 대비됩니다.

이전에 리뷰했던 4월이야기와 더불어 새학기가 시작하는 봄철에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렇게 리뷰를 쓰다보니 다시 한 번 꺼내보고 싶어지네요.

[영화] 4월이야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여학생 우즈키. 그리고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학에 막 입학한 우즈키의 일상입니다. 지방에서 상경해 자취방을 꾸리고,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동아리에 가입하고, 영화를 보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하는, 소소한 일상들입니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들을 영화는 과장된 기법이나 연출없이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자칫 지루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구성탓에 이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는 모두 사실적으로 보이며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객으로 하여금 이제는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갓 스무살이 된 그 때엔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고, 시도였고, 모험이었다는 걸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4월이야기>는 관객의 입장에 따라 영화에 대한 감상이 달라지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자면, 신입생 때는 시큰둥하게 봤고, 2학년 때는 잠시 추억에 잠기며 봤고, 군 제대 이후에는 미칠 듯이 공감하면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또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영화의 러닝타임은 다소 짧은 60분가량. 잠시나마 옛 추억에 잠기고 싶은 분들께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 때, 작은 규모로 <4월이야기> 재개봉을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어찌될지 모르겠군요.

[영화] 노예 12년

실화로 알려진 데다가, 이미 제목에서 영화의 줄거리가 어느정도 설명되어 있는 만큼 줄거리를 비롯한 영화의 자잘한 이야기거리는 스킵해버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3명의 백인을 만납니다. 착한 주인 윌리엄 포드, 나쁜 주인 에드윈 엡스, 선각자 베스. 이 셋은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라보는 기득권 계층의 각기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우선 에드윈 엡스는 자신의 특권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그래서 가련해보이기까지 하는 전형적인 기득권층입니다. 반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목수일을 하는 베스는 만인평등을 이야기하는 상당히 깨어있는 생각을 지닌 백인이구요. 그가 이렇게 노예제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우선 그가 캐나다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가 아니라는 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착한 주인 윌리엄 포드. 개인적으로는 이 캐릭터가 흥미로웠는데요. 그 이유는 (한 영화, 캐릭터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 인물을 기득권층의 위선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포드는 누가 보더래도 선량하고, 기품있는 신사입니다. 그는 노예들에게도 그러한 신사적인 태도로 대하며, 솔로몬 노섭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자 그에게 손수 악기를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노예를 담보로 빚을 졌으며, 불법적인 노예매매에 대해 알면서도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납니다. 근본적으로 그 역시 노예를 재산취급하며 학대하는, 다른 백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죠. 사실 이는 그 개인의 양심 이전에 시대가 가진 패러다임에 관련된 문제, 즉 그 시대와 그 환경에 놓여진 사람으로서의 한계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베스도 미국 남부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엡스나 포드와 같은 사람을 자랐을 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에는 흑인과 노예제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태도를 가진 인간군상이 등장합니다. 솔로몬 노섭의 여정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만,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 그러한 인간군상들에 한 번씩 이입해 들여다본다면 더욱 풍성한 영화감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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