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은 홍콩 액션영화 거장 장철의 1973년작인<자마(刺馬:마신이를 찌르다)>를 베이스로 하는 영화입니다. <자마>는 청대 말기에 벌어졌던 실화를 다룬 영화로, 동치 9년 7월 26일 양강총독 마신이가 의형제인 장문상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살해동기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장문상이 처형당했기에, 이 사건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청대를 대표하는 미스테리 중 하나로 불리우며 호사가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살해동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역시 극화하기엔 치정극이 가장 그럴 듯했는지, 장철은 영화<자마>에서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일정부분 <명장>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진가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시대적 고증을 반영하여 인물의 갈등관계를 보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각색하였습니다.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가기 위해 주요인물의 이름도 ‘마신이’에서 ‘방청운’으로, ‘장문상’에서 ‘강오양’으로 개명해 버렸구요. 그리고 여기에 이 영화의 원제가 <명장>이 아닌 <투명장(投名狀)>인 이유가 있습니다. ‘투명장’이란, 의형제를 맺을 때 자신들과 관계없는 무고한 사람을 함께 살해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일종의 공범의식을 통해 유대를 강화시킨다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이는 사실 상호불신에 대한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난 너를 못 믿겠으니까, 내 앞에서 살인해 봐라. 그럼 널 믿어줄께’라는 뜻이죠. 이렇듯 상호불신의 토대 위에 맺은 의형제라는 점에서, 세 주인공의 비극은 어느정도 암시되어 있던 셈입니다.
영화에서도 투명장 의식이 나오긴 합니다만, 분량이 짧은 데다가 영화제목도 <명장>인지라 해당 의식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관객은 그냥 지나쳐 버리게 된 감이 있습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다소 생소한 단어라고 하더라도 원제<투명장>을 고수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부분이었네요. (이부분에 관해서는 영어 제목이 였던 점도 한 몫했다고 생각됩니다.)
뭔가 영화에 대한 설명과 주석이 장황하긴 했습니다만, 이래저래 중화권에서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묵직한 시대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