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예 12년

2014년 3월 8일

실화로 알려진 데다가, 이미 제목에서 영화의 줄거리가 어느정도 설명되어 있는 만큼 줄거리를 비롯한 영화의 자잘한 이야기거리는 스킵해버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3명의 백인을 만납니다. 착한 주인 윌리엄 포드, 나쁜 주인 에드윈 엡스, 선각자 베스. 이 셋은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라보는 기득권 계층의 각기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우선 에드윈 엡스는 자신의 특권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그래서 가련해보이기까지 하는 전형적인 기득권층입니다. 반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목수일을 하는 베스는 만인평등을 이야기하는 상당히 깨어있는 생각을 지닌 백인이구요. 그가 이렇게 노예제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우선 그가 캐나다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가 아니라는 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착한 주인 윌리엄 포드. 개인적으로는 이 캐릭터가 흥미로웠는데요. 그 이유는 (한 영화, 캐릭터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 인물을 기득권층의 위선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포드는 누가 보더래도 선량하고, 기품있는 신사입니다. 그는 노예들에게도 그러한 신사적인 태도로 대하며, 솔로몬 노섭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자 그에게 손수 악기를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노예를 담보로 빚을 졌으며, 불법적인 노예매매에 대해 알면서도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납니다. 근본적으로 그 역시 노예를 재산취급하며 학대하는, 다른 백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죠. 사실 이는 그 개인의 양심 이전에 시대가 가진 패러다임에 관련된 문제, 즉 그 시대와 그 환경에 놓여진 사람으로서의 한계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베스도 미국 남부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엡스나 포드와 같은 사람을 자랐을 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에는 흑인과 노예제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태도를 가진 인간군상이 등장합니다. 솔로몬 노섭의 여정은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만,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 그러한 인간군상들에 한 번씩 이입해 들여다본다면 더욱 풍성한 영화감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