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 (Her)

2014년 6월 9일

씨네21의 이후경 기자는 이 작품을 두고 이렇게 평했습니다.’시리 농담의 끝판왕’.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한 비평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들 아시듯 이 작품은 인간과 OS의 사랑을 다룬 작품입니다. 앞서 말했듯 짖궂은 농담같은 시놉시스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실없는 농담에서 머물지 않고, 오히려 여느 멜로물보다 진정성있게 다가오는 것은 역시 이 영화가 꽤나 치밀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혼이라는 주인공 테오도르의 개인사에서부터 음성인식으로 컴퓨터가 모든 업무를 대행해주는 미래사회라는 배경, 잠들기 전 컴퓨터가 주선해주는 폰섹스 등등…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OS의 사랑을 설득력있게 만드는 장치는 꽤나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얽혀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설정은 손편지대필작가라는 주인공의 직업입니다. 가족, 연인 등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직접 쓰지 않고 대필을 의뢰하는 사회, 더 나아가 손편지대필 대행업체가 있을 정도로 이런 모습이 일반적인 풍토로 자리잡은 사회란 설정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핵심적인 장치입니다. 이런 피상적 인간관계가 보편화된 환경에서,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OS에 진심을 털어놓는 모습은 얼핏 우스워보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기엔 어딘가 슬퍼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얼굴없는 여주인공 ‘사만다’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는 일전에 단체관람했던 영화 <트랜센던스>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장 큰 비교포인트는 <그녀>의 ‘사만다’가 본래부터 인공지능, <트랜센던스>의 ‘윌’이 본래부터 인간이었음에도, 사만다가 윌보다 더 인간적인 사유를 한다는 점입니다. 윌보다 더 인간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이 실재하는 인격인지 아니면 단순한 프로그램에 불과한지 고민하는 사만다의 모습은 그저 신처럼 군림하려하는 윌의 모습보다 인간적일 뿐 아니라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이 영화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OS의 성생활이라는 소재에까지 접근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민망함을 줌과 동시에 여러 담론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인공지능이 되고 2년이나 지나서야 타인의 몸을 빌려 아내에게 ‘이제 당신을 만질 수 있어’따위의 대사를 읊조리는 윌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차 말했듯 일견 말도 안되는 시놉시스를 ‘말이 되게’ 하는 데에 시나리오 못지 않게 배우들의 열연이 큰 몫을 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이동진 평론가는 목소리로 ‘사만다’를 열연한 스칼렛 요한슨을 두고, 그녀의 모든 연기를 통틀어 최고였다고 평했는데, 개인적으로도 크게 공감합니다. ‘테오도르’로 멋지게 원맨쇼를 연출한 호아킨 피닉스는 포스터에서 보이듯 이 영화의 얼굴 혹은 이 영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