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행복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그 때의 글이 세부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서론과 본론에서 몇 가지 방법론을 제시하다가, 결말에 이르러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진정한 행복이란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행하는 게 아닐까’라며 마무리하는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서툰 문장이었지만 진심을 담아 쓴 글이었고, 그 진심이 닿았는지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글짓기 상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20여년이 지났다. 강산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변하는 와중에도 그 믿음의 골격만큼은 항상 굳건했다. ‘행복한 삶은 스스로 원하는 바를 행하는 삶’이라는 것.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가지 단서가 덧붙여졌는데, ‘근데 이게 생각처럼 늘 쉽지만은 않더라’는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가혹한 법이다. 금전적인 문제, 사회적인 명예, 지위와 관계 등 행복을 위해 넘어서야 할 수많은 조건들이 매순간 우리의 결정을 가로막는다. 심지어 수동적인 삶에 평생동안 길들여진 나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불행한 삶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최근 웹서핑 중에, 우연히 법륜스님과 한 직장인의 고민상담을 듣게 되었다. 힘들게 공부해서 겨우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는데,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하루하루 출근하는 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관두고 싶은데 주변의 시선과 만류때문에 퇴사도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그 회사원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굳이 법륜스님의 대답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몇몇 사람은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도 하겠지만, 그건 해결이라기 보단 유보에 가깝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선 퇴사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정이 또다른 고민의 시작점이라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당장의 생계에서부터 대출이자와 할부금, 경력관리, 재취업 등 자유의 대가로 감당해야할 적잖은 문제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회사원이 고민을 이야기하는 내내 울먹였던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니었을까. 삶은 모 아니면 도 식의 단순한 이지선다 문제풀이가 아니다. 과감하게 도시생활을 박차고 나간 야인들을 다룬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인기는, 어쩌면 이런 현대인들의 대리만족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현대인들의 불행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다. 방법을 알아도 그것을 실천하는데 있어,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행복에 대한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글들은 일시적인 위안을 줄 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지 않는 까닭이다. 최인철 저자의 <굿라이프>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굿라이프>가 던지는 메세지들은 대개 우리가 이미 다양한 경로로 접했던 원론적인 이야기들이다. 다만 그럼에도, 다양한 실증적 연구의 사례를 들어 메세지의 설득력을 높인 점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행복의 본질를 증명해내기 위한 실험의 설계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할지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효용성은 어떨지 몰라도, 사회 및 조직의 정책 연구에는 상당히 유용한 참고자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