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니 매트릭스 / [도서] 선량한 차별주의자

2019년 10월 6일

최근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매트릭스>가 20년만에 재개봉되었다. <성경>에서부터 <장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폭넓게 차용한 이 영화는, 개봉 직후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적 담론을 이끌어냈다. 대표적으로 가상현실, 노장 사상, 불교에서의 윤회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런 다각적인 담론들 사이에서 의외로 많은 이들이 많이 간과하고 있는 논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매트릭스>의 세계관이 차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 다시말해, <매트릭스>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 근거는 매트릭스 1편과 2편 사이에 공개된 <애니 매트릭스>의 수록작 <두번째 르네상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번째 르네상스>는 <매트릭스> 본편 이전의 역사를 다룬 프리퀄 애니메이션으로, 매트릭스의 기원을 신화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소 복잡한 줄거리이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고도화된 인류 문명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인조인간을 만들어 내었다. 인조인간의 개체수가 늘어나며 점차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이를 적대시하는 인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인조인간에 대한 무분별한 테러로 표출된다. 기계와 인간들의 갈등이 서서히 심화되는 가운데, 학대를 견디다 못한 로봇이 인간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살인을 저지른 로봇은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폐기처분을 받는다. 이 일을 계기로 로봇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가 열렸는데,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났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 시위를 무력으로 잔인하게 진압하였고, 인간 사회로부터 추방된 기계인류는 탄압을 피해 자신들만의 국가를 건국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인간과 기계의 갈등은 사회문제에서 국제문제로 양상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기계국가는 뛰어난 기술력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인류의 산업경제를 순식간에 장악했고, 이에 인류는 경제제재와 무역봉쇄로 대응한다. 기계국가는 인류와의 공존을 모색하며 외교적 타협을 시도했지만, 인류는 결코 그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인간과 기계간의 첨예한 외교적 갈등은 곧 새로운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들이었다. 인류는 그들이 가진 핵무기를 동원하여 기계들을 공격했고, 개전 초기에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류는 기계문명의 압도적인 기술력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고, 굴욕적인 항복협정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기계문명의 건전지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가 함의하고 있는 바는 명료하면서도 묵직하다. <매트릭스>의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인간들 자신, 더 정확하게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편협한 차별의식이라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서 보면, 이 디스토피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점은 <매트릭스> 본편에서 시스템을 상징하는 ‘요원들’이 전형적인 양복차림(화이트칼라)의 백인 남성들로 그려지는 반면, 저항세력인 느부갓네살 호의 승무원들이 다양한 인종과 성별을 가진 집단으로 그려지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차별에 대한 인식론적 물음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 속의 인류는 서로 반목하기 보다는 오히려 단합된 모습을 보인다. 특히 종반부의 기계문명과의 전쟁을 앞둔 대목에서는 모든 인류가 국가와 종교, 문화, 인종을 넘어 대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의 차별없는 화합이 또 다른 차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 즉, 차별이란, 우리의 인식 영역 바깥에서 벌어지는 행위라는 것이다.

위의 맥락에서, <두번째 르네상스>나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보며 떠올린 것은, 차별에 대한 문제는 어떤 행위보다는 태도의 문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차별은 무관심이나 무지, 혹은 왜곡된 정보에 의해 발생한다. 바꿔 말해,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상당수의 차별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다문화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 <매트릭스>와 같은 디스토피아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 모두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