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019년 7월 30일

어렸을 적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우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일도 아니고 남의 일인데, 심지어 저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인데, 도대체 왜 우는 걸까? 그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스무 살 무렵부터 슬픈 영화를 볼 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제법 잘 울게 되었다. 변화는 약 10여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던 것 같다. 최근에도 꽤 울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4년 전쯤 부모님과 함께 <국제시장>을 관람했을 때다.

외할머니의 장례 직후였다. 사흘내내 장례식장을 지키며, 어르신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대개 화제는 고인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해서 사회,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방면으로 전개되곤 했는데, 그 중에는 당시 개봉중이던 영화 <국제시장>도 있었다. 익히 알려졌듯 영화 <국제시장>은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온 실향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나의 외가 역시 흥남 철수 때 남한으로 피난 온 실향가정이었다. 본래 외가는 북청에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나이터울이 많이 나는 큰 외삼촌은 흥남철수 당시를 기억하고 계셨다. 큰 외삼촌은 <국제시장>을 보면서, 마치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하셨다. 평소 영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부모님이었지만, 외삼촌의 말씀에 마음이 동하신 듯 보였다. 장례식을 마치는 대로 부모님을 모시고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사실 나는 윤제균 감독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전작 <해운대>를 보며, 작위적인 설정과 노골적인 신파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국제시장>에 대한 기대치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저 효도한다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영화관에 갔다. <국제시장>은 정확히 예상대로의 영화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눈물이 펑펑 나왔다. 외가에서 장례를 지내고 온 여파가 컸다.

흥남철수를 그린 첫장면에서부터, 등장인물과 우리 가족의 모습이 겹쳐졌다. 외할머니가 저렇게 힘들게 내려오셨겠구나, 정착하는 것 또한 쉽지 않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와 가슴 속을 멤돌았다.

슬픔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은 ‘공감’이다. 아무리 그럴 듯한 이야기라도,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슬픔을 느낄 수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허술한 이야기여도 공감할만한 구석이 있다면,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게 <국제시장>은 완전히 후자의 케이스였다. 알면서도 당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심히 못마땅했지만, 이 영화가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것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납득이 갔다. 지극히 상투적인 작품이지만, 그 시대를 직접 살았던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인생영화였을지도 모른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으면서, 어쩐지 이 때의 일이 떠올랐다. 기본적으로 이 책이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평론집인 탓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슬픔이란 곧 공감이다. 그리고 공감의 원천은 경험이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은 공부해야한다. 이는 영상매체나 문학작품을 통한 간접경험을 장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론집인 이 책의 제목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인 것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었을까?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덕분에 새로 접하게 된 작품도 있었고, 존재 자체를 처음 알게 된 작품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온전히 읽었다고 보기엔 다소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당장 찾아봐야할 작품이 늘었다는 점이 반갑고 또 즐겁다. 어떤 공부든 끝이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