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이방인

2019년 4월 30일

내가 어릴 적, 우리집은 자주 이사를 다녔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마다 옮겨다녔던 것 같다. 그만큼 학교도 자주 옮겨다녀야 했고, 그와 동시에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깨달은 것 한가지는,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동네는 동네들대로 참 다르다’는 점이었다. 이사를 다닌 곳은 전부 서울 시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마다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놀이의 룰이 달랐고, 놀이에서 사용하는 어휘가 달랐다. 심지어 아이들이 수시로 내뱉는 비속어의 억양조차도 조금씩 달랐다. 그런 까닭이었을까. 아이들은 내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낄낄대며 자지러지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좀 억울한 기분도 들었지만, 이내 그들의 방식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10대를 철저히 이방인으로서 보냈다. 요새 흔히 말하는 ‘인싸’도 ‘아싸’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가 나의 자리였다. 그 애매한 위치에서 나는, 사람들과 애매한 거리를 두는 법을 익혔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 한동안은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다. 계기는 군 전역을 앞둔 20대 초중반의 언저리에서, 친했던 군대 후임이 내게 던진 말 한 마디였다.

“다른 고참들은 전역 앞두고 전화번호다, 주소다, 하며 이것저것 남기는데, 윤뱀은 안 하십니까?”

그의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그 이면에서는 적잖은 서운함이 느껴졌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당시 내 상황에 대해 부연하면, 나는 디자인병이란 명목으로 남들과 조금은 다른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첫 자대였던 오산 비행장에서 대공포병으로 복무하다가, 디자인병으로 차출되어 계룡대 공군본부로 내려가 1년을 복무하고, 말년은 자운대 공군대학에서 보내게 되었다. 2년 남짓의 짧은 군생활에서조차도, 나는 이방인의 삶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가끔 부모님도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너는 애가 왜 그렇게 차갑니?”

거기에 군대 후임의 말까지 더해지면서, 나는 일종의 각성을 했다.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번 독서모임을 통해 카뮈의 <이방인>을 읽게 되었다. <이방인>의 줄거리는 명료하지만, 그 이면의 메세지는 제법 난해하다. 본편만큼의 분량으로 수록된 해설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 주인공 뫼르소는 확실히 일반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런 그의 독특한 개성은 소설의 첫문장에서부터 드러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냉소적인 첫 문장에서부터 소설 말미에 이르기까지, 뫼르소는 시종일관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보인다.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상당히 난해한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그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여기에 그럴듯한 몇 가지 수식을 더해 보고 싶지만, 마땅한 문장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더불어, 이미 수많은 해설이 제시된 작품인만큼 관용적인 표현을 쓰는 게 오히려 식상해 보이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어딘가 그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라는 게 지금의 내게 있어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감상평인 것 같다. 한 10년 쯤 뒤,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