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 같아. 예전에는 은하 1호였는데 언제부턴가 은하 2호가 된 것 같아.”
“그럼 너는 영재 몇 호?”
“나는 영재 6호. 원래 그냥 소심한 영재 5호쯤 됐는데. 너 만나고 영화 만들고 그러면서 영재 6호가 된 것 같아. 자기중심적인데 좀 귀여운 그런 거. 근데 이제 너랑 헤어지면, 영재 7호가 되겠지. 너를 그리워하면서 시나리오나 쓰는…나중에라도 은하 3호가 나타나서 영재 7호를 다시 사랑해주면 좋겠다.”
– 영화 <은하해방전선> 중에서 –
나는 윤성호 감독의 2007년 作 <은하해방전선>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배우들의 열연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의 매력은 정말 무궁무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위에 인용한 대사였다. 세상에… 영재 5호가 은하 1호를 만나 영재 6호가 되었다니…사람이 사람을 만나 변하는 과정을 이만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자신의 지난 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형준 몇 호란 말인가?
최근에 많이 쓰이는 신조어 ‘케미’라는 단어의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관계는 화학작용과 유사한 점이 많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며, 일단 관계가 시작되면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나 역시 대부분의 경우,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변화해왔다. 10대 시절의 나는 낯을 심하게 가리는, 소심한 아이였다. 그랬던 내가 변한 건 ‘남고’라는 조금 색다른 환경에서였다. 거칠고 과격한 남자아이들 사이에 부대끼며, 조금씩 대범해지는 법을 익혔다. 20대 초반의 나는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청년이었다. 매사에 우물쭈물하고, 실천하지 못한 일에 대해선 항상 변명으로 일관했다. 스스로도 답답해했던 내 성향을 바꾼 건 다름 아닌 ‘군대’였다. 군대에서는 언제나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2년을 보내고 전역할 무렵, 나는 더 이상 행동하는 걸 겁내지 않게 되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였다. 취업이나 진로는 때가 되면 알아서 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엄혹한 취업시장을 체감하고, 졸업 후 1여 년간 블랙회사를 다녀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현실감각이란 걸 익힐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변화의 순간이 있었다. 스무 살 이후, 적어도 매해 2~3번 정도의 크고 작은 업데이트를 했던 것 같다. 굳이 지금의 내게 번호를 매긴다면 대략 형준 28호쯤?
정이현 작가의 산문집 <우리가 녹는 온도 : 그들은 나는 우리는> 에도 그런 변화의 순간에 직면한 사람들이 나온다. 달라진 환경이나 입장, 감정 때문에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상황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읽기 편했다. 사건의 경위가 구체적으로 적혀있지 않아도, 행간에 숨겨진 사연들이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마치 ‘기승전결’에서 ‘승’이나 ‘전’의 부분만 따로 발췌해 놓은 듯한 구성. 마치 닭 다리로만 이루어진 치킨세트 같은 책이었다. 일주일 동안 출퇴근 길에 매일 한두 꼭지씩 찬찬히 읽어내려가며, 그간 내가 겪었던 변화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그렇게 며칠씩 반복하다 보니,몇 가지 궁금점이 생겼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 책을 재밌게 읽으셨습니까? 공감하셨나요?
그렇다면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은 몇 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