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취업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토익 점수는 물론, 그 흔한 인턴 경력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진로를 너무 늦게 정한 탓이었다. 그 시기의 나에게 있어 ‘직업’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했던 ‘직업’이라는 건 어른들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순진하고 막연한 생각이지만 그땐 정말로 그랬다. 스스로 어른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학생이란 신분을 방패 삼아 ‘나는 아직 아이야’하고 자기변명을 하고 있었다. 법적으로는 이미 어른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이인 상태였다. 문득 정신이 들었던 것은 졸업전시가 마무리된 직후였다. 전시를 마치고 철거되는 작품들을 보며 나의 학창시절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부랴부랴 그동안 작업했던 과제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경력, 소소한 공모전 수상실적을 모아보았지만, 그 넓디 넓은 A4 용지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당연히 구직활동도 난항이었다. 내가 인사 담당관이었어도 탈락시켰을 법 했다. 그 정도로 그 당시 나의 상태는 애매했고,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엉망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취업준비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취업준비생이라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일단 아직은 학생이긴 했고, 이전보다 좀 더 취업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취했을 뿐이었다. 당시 나의 대부분 일과는 입사 지원서를 작성하거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 외의 나머지 시간은 대형 서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 중간중간 여행을 떠나기도 했던 것 같다. 살아오면서 나 자신이 가장 쓸모없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바꿔말하면,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던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 자유를 최대한 누리며,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그림을 그렸고, 수없이 스스로를 돌아봤다.
이력서 한줄 감도 못 되는 일들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가끔은 그 시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오늘의 나를 구축한 토대는 그 시절에 다져진 것일지도 모른다.소설 <달의 바다>에 나오는 주인공의 미국여행기를 보고 있으면, 나의 취업준비생 시절이 생각난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의외의 희망을 발견하기도 하는 나날들. 실은 평범한 일상에 불과할 뿐인데, 어쩐지 그 때는 그 하루하루의 의미가 매번 다르게 다가왔었다. 문학 평론가 김현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문학은 무용無用하기 때문에 유용有用하다.”
청춘의 방황도 문학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누구에게나, 쓸모없기 때문에 의미 있는 시기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일행이 미국 여행 후에 각자 나름의 성장을 이뤄냈던 것처럼. 그러니 당장 오늘 당신에게 방황의 순간이 찾아왔다 해도 좌절하지 말기를. 무용해 보이는 시간 속에서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