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뷔페가 좋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을 입맛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뷔페가 좋다. 마지 못해 참석한 지인의 결혼식에서 뷔페가 아닌 코스요리라도 나오면, 나는 시무룩하다 못해 참담한 심정이 되어버린다. 정갈한 정식이나 코스요리가 땡기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나는 뷔페를 선호하는 편이다. 다양한 주방에서 다양한 재료, 다양한 조리법으로 만든 요리를 한 접시에서 맛보는 것은 뷔페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뷔페같은 책이다. 여러 작가가 각기 다른 소재와 주제의식을 가지고 집필한 단편소설들이 실린 책이다.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마주한 고급 뷔페만큼이나 반갑고 즐거운 책이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가들의 약력이다. ‘젊은 작가’로 구분되는 것은 몇 살까지일까? 나름대로 ‘작가’를 지향하고 있는 나로선 꽤나 궁금한 점이었다. 85, 76, 83, 83, 87, 74, 88. 음 이 정도면 나도 아직은 ‘젊은 편’이겠구나 하고 안도했다. 책 뒤쪽에 실린 심사 경위를 보니,
젊은 작가상은 등단 십 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 문단에서의 젊음과 늙음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등단 햇수를 기준으로 매겨지는 듯 하다. 하긴 그렇지. 젊음과 늙음의 기준이 생물학적 연령이 되어서는 안 되지. 나는 주최 측의 혜안에 감탄했다.
세 여성의 문화적, 역사적 인식 차이를 다룬 <세실, 주희>에서부터, 자본에 잠식된 미술계를 풍자하는 <회랑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행운과 불운의 균형과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들의 이해관계>, 존엄사에서 대해 담담하게 풀어낸 <더 인간적인 말>, 소비자를 기만하는 바이럴 마케팅을 비판한 <가만한 나날>, 불편한 가족관계를 초현실적인 묘사로 그려낸 <한밤의 손님들>, 남다른 성적지향을 가진 영화인의 이야기를 재치있는 입담으로 풀어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 이르기까지,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일곱편의 중단편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주제의식,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 입맛에 가장 맞았던 것은 임현 작가의 <그들의 이해관계>로, 사소한 일상이 거대한 참사로 확장되는 전개와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갈등상황 및 그 갈등의 해소 과정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나 자신 혹은 내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점에서 가장 공감이 많이 되는 소설이었다. 본편만큼이나 후기도 재미나게 적은 작가도 있었는데,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의 임성순 작가였다. 본편에서의 속도감있는 전개와 묘사도 일품이지만, 후기에서의 입담은 그야말로 토크쇼를 방불케한다.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소설과는 별개로, 수록작 중 가장 독특한 향취를 풍기는 작품은 박상영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였다. 동성애와 영화, 군대, 노래방 등등 다소 이질적인 소재들을 줄줄이 엮어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작가의 솜씨에 경의를 표한다. 이 외에 다른 작품들에도 나름의 감상과 해석을 주렁주렁 달아보고 싶지만, 책 말미에 수록된 심사평들을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정도를 넘어 왠지 그러면 안 될 것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러므로 굳이 하지 않겠다.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젊은작가상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이다. 맙소사 벌써 9회째라니. 여유가 될 때마다 이전 수상작품집도 찾아보려 한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제전이 확장되고 또 활성화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