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 노바디 / [소설] 버스데이 걸

2018년 6월 26일

소설가 김연수는 자신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에서, ‘과거 = 안다, 현재 = 산다, 미래 = 모른다’ 라고 이야기했다. 즉, 삶이란 ‘모른다’에서 ‘안다’로 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다.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라는 단어는 ‘가능성’의 유의어 내지는 동의어로도 활용된다. 우린 그 가능성 때문에 매순간 선택의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그 가능성이 최상의 형태로 발현되도록 틈날 때마다 소원을 빈다.

<미스터 노바디>의 주인공 니모 노바디는 천사의 실수로, 미래를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앞두고 양친 중 누구를 따라갈지에서부터, 어느 여성을 배우자로 택할 것인지. 그 외에 크고 작은 부수적인 선택지에 이르기까지, 노바디는 자신에게 닥칠 수많은 경우의 수와 그 결과를 미리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알 수 있게 된 시점에서 그것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니며 가능성 또한 남지 않게 된다. 결국 노바디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던 시점으로 돌아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양자택일의 미래가 아닌 제3의 길을 향해 달려나간다. ‘모른다’에서 ‘안다’로 향하는 여정을 택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노바디의 현재 = 삶은 유의미해진다.

<버스데이 걸>의 ‘그녀’는 자신의 20번째 생일날,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의 사장으로부터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앞서 말했듯 소원이란, ‘이상적인 미래’의 다른 표현이다. 그녀는 사장에게 소원을 빌었고, 사장은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녀가 사장에게 말한 것은 ‘시간이 걸리는 소원 = 먼 미래’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소원을 이야기했는지 화자에게 끝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바디가 가능성을 향해 제 3의 길로 나아간 것처럼, 그녀도 자신의 미래가 단정되어 버리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