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지금은 없는 이야기

2012년 1월 17일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얻은 깨달음 하나, 세상은 이야기가 지배한다. 단순한 구조의,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는, 짧은 이야기들. 교훈적인 우화들과 가슴을 적시는 수많은 미담들. 그 이야기들은 너무 쉽게 기억되고 매우 넓게 적용되며 아주 그럴싸해서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는 강력한 관점을 제공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최규석의 우화를 처음 접한 건 아마 20대 초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묘하게 공감되면서도 어쩐지 불편한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며, 내가 느꼈던 감상은 “굳이 이렇게까지 염세적일 필요가 있을까?” 였다. 보다 과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소위 ‘빨갱이’란 단어로 작가를 수식해도 좋을만큼 그 당시의 내가 읽었던 최규석의 우화는 ‘못 가진 자’의 서러움과 울분으로 가득차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어렸고, 노력이 최우선의 덕목이라 믿고 있었으며, 근면함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신앙을 가진 맹목자였다. 그랬던 그 무렵의  내게 있어 최규석의 우화는 이단의 금서, 사교도의 속삭임처럼 불경한 것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나도 군대를 가고, 길고 짧은 사회생활과 조직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부조리와 불합리를 겪고, 그 것들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비로소 나는 내가 가진 신앙과 이 세상이 너무나도 달랐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이단에 눈을 떴다기보다는,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교화, 회개와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배웠던 성실, 근면, 노력 등과 같은 덕목이 잘못된 가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배웠던 그러한 가치와 규범들이 실제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최규석은 우화를 통해 그러한 진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최규석의 우화는 모두 하나같이 명쾌하다기보다는 찝찝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통쾌한 웃음을 주는 과거의 우화와는 다르게, 씁쓸한 웃음을 남기는 이야기다. 착한 인물은 비참하게 농락당하고, 노력하는 이는 조소당하는 이야기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마냥 안타까워 할 수만도 없는 이야기다. 이렇게 우화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혹은 애써 외면해왔던 사회의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규석의 우화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우화인 것이다.